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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신임 원장이 오늘(11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습니다.

KISA는 2009년 7월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와 한국인터넷진흥원(NIDA),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CCA) 3개 기관이 통합해 출범했습니다.

이제 출범한지 만 5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하지만 원장은 벌써 4번째입니다. 평균 1년 조금 넘게 원장직을 수행한 것입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정보보호 전문기관인 KISA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요.

KISA 초대원장은 새누리당 출신으로 17대 최연소 국회의원, 최연소 여성 청와대 대변인, 최연소 여성부 장관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 김희정 여성부 장관입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KISA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하지만 1년 남짓 KISA에 머무른 김 전 원장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고 19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정치인으로 부활했습니다.

김 전원장의 뒤를 이은 2대 원장은 KT 출신인 서종렬씨입니다. 서 전원장은 통신사 출신으로 보이지만 그의 이력서에는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전문위원이라는 타이틀이 존재합니다. 서 전 원장은 2012년 6월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불명예 퇴진하게 됩니다.  

3대 원장은 현 이기주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1~2대 원장에 비하면 그는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관련 업무경험을 쌓아온 것으로 평가됐지만 그 역시 임기를 마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4대 원장에 백기승 전 청와대 비서관이 임명됐습니다. 또 다시 정치, 청와대 등의 단어가 개입되고 말았습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이 임명했지만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최양희 장관은 “정치권 인사는 배제하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됐습니다. 모양새만 빠지게 됐습니다.

추석연휴 직전 날, 업무 종료 20여분전 기습발표. 누가봐도 떳떳하지 못한 인사였습니다. 야당에서는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학습효과 때문일까요. 신임 원장은 얼마나 KISA에 머무를지, 정말 업무는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누구처럼 논란거리나 만드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정통부(MIC)는 몰라도 KISA는 안다”는 한 고위 공무원 말이 귀에 맴돕니다. KISA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의 보안, 인터넷 분야의 최고 기관입니다. 아무리 양보해도 정치인, 청와대, 대통령 등의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KISA 원장 인사는 그냥 포기하며 지켜보는 상황이 됐습니다. KISA 원장이 되기 위한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날입니다.
2014/09/11 16:45 2014/09/11 16:45
올해 이동통신 전체를 꿰뚫는 화두를 하나 꼽자면 단연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기존 3세대(G) 네트워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LTE는 국내 4G 이동통신 기술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서비스 개시 1년여 만에 가입자 1000만을 돌파했다. 연말 이통3사의 목표는 1600만명이다.

반면, LTE에 비해 5년 이상 먼저 서비스에 들어간 와이브로는 위태위태하다. 저렴한 이용료에도 불구, 여전히 가입자는 정체상태다. LTE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만명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와이브로 정책이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까? 투입 비용 대비 가입자 숫자만 놓고 보면 명백한 실패이다. DMB, 위피(WIPI)도 모두 결과만 놓고 보자면 실패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정책의 실패와 성공을 얘기해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질 수 없다. 가입자만 놓고 보면 와이브로는 명백한 실패지만 우리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주도했고, 실제 상용서비스 및 수출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정책실패로 매도하는 것은 과하다.

DMB, 위피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등장한 다양한 모바일TV 때문에 DMB가 어려워졌고, 폐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위피 역시 아이폰 도입 등을 지연시킨 혐의를 받고 있지만 정책이 도입됐던 당시로서는 나름의 정책적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다. 와이브로를 통해 삼성전자는 통신장비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용자들 역시 LTE 도입 한참 전부터 고속 모바일 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여전히 사물통신, 데이터 통신 측면에서 이용가치가 남아있다.

문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ICT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발 빠른 개방정책이 필요했지만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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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와이브로의 경우 국산기술 활성화라는 정책 달성을 위해 글로벌 표준 대세에 역행하는 오류를 범할 뻔 했다. 방통위는 그동안 우리 기술로 개발한 와이브로를 시장에 정착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사업자들을 압박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LTE라는 단어는 통신3사, 삼성전자 등에게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금지어였다. LTE를 준비하고 있어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와이브로에 올인한 방통위 눈치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와이브로와 LTE 격차는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 방통위 입장은 변화가 없었다. 물밑에서 사업자들이 LTE를 준비하고 있어도 와이브로가 LTE에 비해 비용, 효율성이 높다고 외쳤다.

사업자들이 방통위 눈치를 어느 정도 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화가 있다. 2010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에서 당시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부스를 방문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에게 “지난해까지는 (분위기상) LTE 얘기를 꺼낼 수 없었지만 안되겠다 싶어 이젠 공개적으로 LTE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최 전 위원장은 “두 가지 다 잘해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 기술이 다수 반영된 와이브로를 살리기 위해 애써 LTE를 외면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방통위가 통신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과로 꼽는 것은 LTE 기반의 네트워크이다.

지금처럼 우리가 네트워크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던 1990년대 초반. 정보통신부는 미국의 TDMA, 유럽의 GSM 대신 CDMA라는 낯선 기술을 채택,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고 IT 강국으로 도약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방통위는 와이브로가 제 2의 CDMA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시장상황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방통위 스스로 밝혔듯이 우리의 IT 경쟁력이 정부가 앞장서 따라가는 시대와 같지 않다. 우리 기술이 표준화 경쟁에서 승리하고 활성화 된다면 정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사업자들에게도 많은 혜택이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이통사들이 LTE 대신 와이브로에 올인했다면 이는 방통위의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로 남을 뻔 했다.

2012/11/06 09:43 2012/11/06 09:43
12월 대선을 앞두고 ICT 조직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단행된 정보통신부 해체는 5년이 지난 지금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부처간 의견조율이 실질적으로 어려웠고 세계 ICT 산업 환경이 C(콘텐츠)-P(플랫폽)-N(네트워크)-D(디바이스)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현재의 분산형 거버넌스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과거 정통부+α가 될지, 전혀 새로운 부처가 될지, 방송분야가 독립을 할지 아직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 조직개편에 앞서 현재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먼저 반성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새로운 그림을 올바르게 그릴 수 있다. 특히, IT와 산업의 융합차원에서 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의 한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방통위의 구체적인 정책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성과와 한계를 집중 분석해 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5년의 평가에 있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조직 문제다. 부처, 청도 아닌 수백개 중 하나인 위원회로 출범한 방통위는 방송위와 정통부를 결합하며 미국의 FCC를 표방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진흥도, 규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해온 정통부와 방송위의 동거는 방통위 출범 초기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겉으로 보면 정통부와 방송위의 1:1 결합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방송위가 정통부에 흡수·합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수인 정통부가 조직을 장악했고 그 가운데 보수, 직급, 업무 적응 실패 등의 이유로 방송위 출신들의 이탈이 한동안 이어졌다.

당연히 실·국장 등 고위직은 정통부 출신 행정관료 등의 차지였다. 방송위 업무였던 방송정책 역시 정통부 출신들이 집행했다.

방통위 출범 당시 전체 14명 보직자 가운데 정통부 출신은 9명, 방송위 출신은 3명이었다. 시작부터 방송위 몫은 적었지만 2012년 현재 방송위 출신 실국장은 단 한명도 없는 상태다.

과장급 보직자 현황 역시 상황은 동일하다. 방통위 출범 당시 전체 53명 보직자 가운데 정통부 출신은 35명, 방송위 출신은 18명이었다. 현재 과장금 68명 중 정통부 출신은 50명이고 방송위 출신은 정원 증가에도 불구 17명으로 한명이 줄었다.

이상식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공무원 조직의 권위주의적 특성이 많이 반영되고 행정관료 조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폐쇄적, 창의성 결여, 문서화, 위계성 강조 등이 부각됐다"며 "그 결과 방송위 조직의 개방성, 창의성 등 민주적 분위기를 지닌 유연한 조직 특성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따라 융합업무를 담당해야 할 전문가 영입 필요성도 제기됐지만 오히려 기존의 방송 관련 인력이 조직을 떠나면서 조직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상임위원회였다. 여야, 대통령 몫으로 구성된 5인의 상임위원들은 전문성, 정책역량 보다는 정당의 의견을 대변할 사람들로 구성됐다.

몸통은 정통부가 더 컸지만 머리(상임위원)은 오히려 방송, 정치 관련 인사가 더 많았다. 결론적으로 여 3, 야 2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는 말그대로 산업정책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보다는 종편, 방송법 개정 등 정치성이 결부된 사안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5인의 상임위원은 방송 및 시민단체가 3명, 통신이 2명이다. 그나마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이계철 위원장이 온 것이다.

이상식 교수는 "방통위 설립은 노골적인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으로 간주됐다"며 "정치적으로 강행된 초대 위원장 임명은 정치적 반발을 초래했고 여타 위원들의 전문성, 미디어에 대한 철학 및 정치적 역량, 사회적 명망 등의 차원에서 문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2012/10/29 14:54 2012/10/29 14:54

- 딜라이트닷넷 창간 3주년 특집

방송통신위원회의 한계와 분산된 ICT 정책기능으로 인한 비효율성 때문에 조직개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현재의 ICT 정부조직 체계에 메스를 대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물론, 지경부·행안부·문화부 등 정통부의 기능을 물려받은 부처들은 통합 움직임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변화하는 글로벌 ICT 환경에 걸맞은 조직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지금까지의 큰 그림은 방통위를 포함, 각 부처로 흩어진 ICT 정책기능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방송 분야와 콘텐츠, 규제기능 등을 어떻게 담을지가 논의의 핵심이다.

지경부 등으로 흩어진 ICT 기능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 결국은 정통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와 진흥은 물과 기름인 만큼 섞어놓아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ICT 정책 분산 이후 정통부가 재조명 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통부는 늘 조직개편의 대상이었지만 승자가 독식하는 ICT 환경하에서는 강력한 추진력과 독임제 방식의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문제가 있기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전 WCDMA, 초고속인터넷, 와이브로 등 정부주도의 진흥정책 방식은 현재의 ICT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것도 사실이다. 예전에는 방송과 통신 정책이 따로 국밥이었어도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ICT 패러다임 변화를 고려할 때 단순히 정책기능을 한 곳에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통부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N(네트워크)과 D(디바이스)는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였다. 하지만 구글 등 글로벌 ICT 기업 주도의 플랫폼 경쟁환경을 고려할 때 P(플랫폼)를 포괄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진흥 및 규제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

아울러 지금까지 문화적 시각으로 다뤄왔던 C(콘텐츠) 분야 역시 아우를 필요가 있다. 유통 측면에서 플랫폼과 네트워크와의 유기적인 정책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콘텐츠, 소프트웨어 산업 역시 성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뜨거운 감자인 방송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조직개편 논의에서 가장 이견이 많은 부분이 방송을 과거 방송위원회처럼 완전히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과거 정통부와 방송위 시절을 복기해보면 그리 훌륭한 대안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학계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임제 내에 독립적 기능을 갖춘 방송관련 위원회를 두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방송과 통신을 더 이상 별개로 보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직 정통부 장차관과 ICT 유관 협단체 등이 참여해 최근 출범한 ICT 대연합은 "국가는 ICT 생태계 활성화를 방해하는 수많은 시장실패 원천들을 찾아내 해결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흩어진 기능을 모아야 한다는 큰 그림은 그려져 있다. 이제 그림에 색을 칠하는 작업이 남아있다.  

쪼개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다시 모으고 개선시키는 것은 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문제점이 명확하다면 이해관계를 넘어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2012/09/26 13:30 2012/09/26 13:30
-딜라이트닷넷 창간 3주년 특집기획

ICT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활발한 이유는 정책 분산으로 인해 폐해가 컸기 때문이다. 부처간 업무중복에 업계도 어느 곳과 얘기를 해야 할지 헷갈려했다. IT콘트롤타워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던 이유다.

또한 정통부의 뒤를 이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도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실질적으로 방통위가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했지만 정치에 매몰되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초 방통위는 융합서비스 활성화를 통해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결과론적으로 정치적 이슈에 집중하다보니 정보통신 진흥 및 정책기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겉으로 보여진 출범 취지와 목표는 긍정적이었지만 업무 추진과 성취도 면에서는 낙제점 수준인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자 스스로를 정치인으로 불렀던 최시중 전 위원장은 정권 출범과 함께 1기에 이어 2기 위원장까지 연임했지만 사실 ICT 정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국가의 ICT 정책을 이끌어 낼만한 역량이 없었다. 방통위 출범 이후 “ICT 정책이 변두리로 밀려났다”는 지적이 나올 만했다.  

여기에 5인의 합의제 의사결정 구조도 방통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야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선임한 상임위원들로 구성되다 보니, 필연적으로 전문성 부족과 정치과잉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최종 의사결정을 상임위원회에서 하다보니 사무국의 권한은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당초 사무국이 기획했던 정책은 상임위원회에서 뒤바뀌는 경우가 허다했고, 개개인의 성향과 철학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기도 했다.

미국의 규제기관 FCC를 꿈꿨지만 근본적인 태생의 문제와 인적 한계로 인해 방통위는 규제기관으로서도, 진흥기관으로서도 이도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방통위 활동에 대해 “중구난방·정치과잉·용두사미”로 요약했다. 급변하는 IT 환경하에서 진흥과 규제 업무를 담당하는 방통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최시중 전 위원장 체제의 방통위는 그러했다.

방통위 출범이 방송과 통신, IT와 타 산업간의 융합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음은 분명했다.

정치인인 최시중 전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그것은 IT, 방송산업 발전이 아니라 방송법 개정을 통한 정권에 힘 실어주기였다. 2기 위원장에 연임한 것 역시 갓 출범한 종합편성의 안착을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같은 방통위 문제점에 대해 안정상 민주통합당 전문위원은 “위원회 인적 문제, 특히 리더인 위원장의 문제였다. 정말 정책적으로 접근했어야 했는데 결국 모든 논의의 구조가 위헌성이 있었던 방송(종편)에 집중한 것이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통부 역시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통부 해체 이유가 지금은 조직개편의 당위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한 발전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2012/09/26 13:28 2012/09/26 13:28

[기획/딜라이트닷넷 창간 3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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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진대제, 이명박 정부의 최시중. 이 둘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ICT에 대한 시각은 어떻게 다를까.

이명박 정부 들어 등장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실상 다음 정권에서 수명을 이어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편의 범위와 방식에 이견이 있을 뿐 현재의 ICT 정부조직으로는 다음을 준비하고 이끌어가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서는 ICT 거버넌스 체계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각 당에 많은 학자들이 붙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체신부, 정통부 전직 장차관, 전직 고위공무원, 협단체 등이 모여 본격적인 방향 모색에 들어갔다.

혹자는 정통부 부활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통부 때보다 오히려 규모가 커진 독임제+위원회 조직을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왜 정통부가 해체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출범한 방통위의 한계와 역할은 무엇인지를 먼저 규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ICT 발전을 위한 조직개편 논의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운영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의 철학이다.  

먼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정치인 중 가장 IT와 가까운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4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정치인을 위한 인물 관련 종합자료 관리 프로그램인 '한라 1.0'을 직접 개발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선택한 인물은 바로 진대제씨였다. 진 전 장관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부문 상무, 메모시 사업부장, 디지털미디어 총괄대표 등을 역임한 자타가 공인하는 IT 전문가였다.

업계의, 그것도 삼성전자 사장 출신을 ICT 정부조직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게다가 진 전 장관은 노 전대통령과 임기를 대부분 함께 했다. 이는 정책과 현장의 괴리감을 없애고 정책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적극적인 정보기술 정책이 이어졌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2003년 13위에 그쳤던 세계 각국의 전자정부 평가에서 2004․2005년 연속 세계 5위로 순위를 급상승시켰다. 정보기술로 국민 참여 정도를 측정하는 전자적 참여지수는 2003년 12위에서 3위로 껑충 뛰었다.

이때 구축된 경쟁력은 이명박 정부들어서도 우리나라가 전자정부 지수에서 최고를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물론, 진대제 전 장관의 정통부가 조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놓고 방송위원회와의 갈등은 결국 정통부 해체의 단초가 됐다. 다른 분야와 융합보다는 독자적인 정책방향은 적들을 만들어냈다. 로봇이나 전자정부 등 정통부가 맞기에는 애매한 분야에도 정통부가 발을 걸치며 영역을 확장한 것 역시 결과론적으로는 독이됐다.

최근 ICT 분야의 11개 협회, 15개 학회, 7개의 포럼을 비롯해 전직 체신부, 정통부 장차관 등이 참여한 'ICT 대연합 출범식'에서는 공교롭게도 진대제 전 장관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진 전 장관이 정통부 해체의 단초를 마련했을수도 있기 때문에 이름을 차마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통부를 해체하고 새롭게 ICT 융합정책을 이끌어갈 방통위의 수장으로 최시중씨를 앉혔다. 최 전 위원장은 대한민국 권력서열 No3, 방통대군 등으로 불리우며 4년 가까운 시간을 위원장으로 재직했다.

다른 장관과는 달리 최시중 전 위원장이 1기에 이어 2기에도 연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정책의 일관성 유지 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대제 전 장관은 나름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전 위원장의 조합도 상당히 어울렸다. 문제는 목적과 방향성 이었다.

노 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ICT에 친화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IT는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안된다"는 발언으로 ICT 업계를 실망시킨 바 있다. 각각 소통과 4대강으로 요약되는 철학이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진대제 전 장관은 업계 전문가였고, 최시중 전 위원장은 정치 전문가였다. 최 전 위원장은 스스로를 정치인으로 여겼고, 현 대통령의 멘토이자 차기 대통령의 멘토를 꿈꾸던 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씨를 방통위 수장에 앉히고 연임까지 시킨 목적은 분명했다.

ICT 발전에 대해 책임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종편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이슈의 마무리 때문이었다. 최 전 위원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한국갤럽 사장 등을 거쳐 방통위원장 자리에 올라섰다. ICT에 대한 경력은 전무했고, 방통위원장에 임명됐을 당시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업계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 최시중 위원장은 정권의 종편 출범을 위해 위원장을 맡았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 강한 추진력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진대제 전 장관과 최시중 전 위원장의 공통점은 대통령의 신임을 전폭적으로 받았고, 임기 역시 다른 장관과는 달리 장수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목적이 달랐던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은 결국 새로운 정부조직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제공 방송통신위원회>


2012/09/26 13:27 2012/09/26 13:27
- 딜라이트닷넷 창간 3주년 특집기획

연말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ICT 정부 거버넌스 개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라고 했던가.

디지털데일리 <딜라이트닷넷>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정통부의 공과(功過)와 앞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방통위의 공과(功過)를 통해 앞으로의 ICT 정부 거버넌스의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대선을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세종시로 정부부처가 이전하기 시작했고, 공공기관들도 나주, 진천, 음성, 서귀포, 원주 등 10곳의 혁신도시로 이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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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부조직 개편 중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분야는 방송통신위원회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보통신부 해체 이후 방송위원회와 신접살림을 꾸리고 통신과 규제를 제외한 제조, 보안,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은 지경부, 문화부, 행안부 등으로 분산됐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국내외 ICT 환경이 생태계, 플랫폼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현재 우리의 ICT 정부조직 기능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게다가 정통부 대안 역할을 해주는 것은 물론, 융합 시대를 활짝 열 것으로 기대됐던 방통위는 매사 정치 관련 이슈로 방송, 지면을 장식했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임위원들, 비정상적 합의제 구조로 운영 효율성마저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었다. 방통위 출범 이후 내내 IT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끊이질 않았다.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보니 다시 정통부 부활론이 솔솔 불고 있다. 물론, 참여정부 시대의 정통부의 모습은 아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ICT 산업 전반은 물론, 콘텐츠까지 아우르는 그림을 그리느라 한창이다.

참여정부 시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삼성전자 출신인 진대제씨를 첫 정통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진 전 장관은 참여정부 국무 각료로서는 보기 드물게 노 전대통령과 임기를 대부분 함께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진 전 장관에게 10년 15년 뒤의 우리나라 IT 기반을 닦아 놓을 것을 주문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IT839 정책이었다. 8대 서비스와 3대 인프라 및 9대 신성장동력을 통해 우리나라 IT산업을 총체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IT839는 정통부 해체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당시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정부조직의 군살을 빼내야 한다"고 말했고 인수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IT839의 9대 신성장동력 대부분(차세대 이동통신기기․디지털TV/방송기기․홈네트워크 기기․텔레매틱스 기기․차세대PC․지능형 로봇․IT SoC․임베디드SW․디지털 콘텐츠)를 지경부, 문화부 등으로 이관했다.

물론, 담당 부처가 바뀌었을 뿐 IT839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ICT 담당부처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면서 정부조직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에 전달됐다.

특히, 정통부 후계자인 방통위는 방송위와 합치면서 ICT 조직보다는 방송 이슈에만 매몰되는 모습을 보였다.

평가는 저마다 다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업계 최고수로 꼽히던 진대제씨를 장관을 앉혔고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씨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했다. 둘은 나란히 대통령과 임기 대부분을 함께 했다.

하지만 최시중 위원장은 ICT 분야에는 문외한 이었고, 조중동 특혜로 대변되는 종합편성채널 출범에 온힘을 기울였다. 방통위는 합의제로 운영됐지만 여당측 3인, 야당측 2인으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는 최시중 전 위원장의 일방통행을 견제하지 못했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최시중 전 위원장 임기 4년간의 평가를 "중구난방, 정치과잉, 용두사미"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최시중 전 위원장의 방통위는 ICT 현안보다는 정치적 이슈에만 몰입했었다. 산업간 융합,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당초 방통위의 정책과제는 5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IPTV를 정책적 성과로 얘기하지만 단순 유료방송 플랫폼이 하나 더 등장했다는 것 이외에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제공 방송통신위원회>
2012/09/26 13:24 2012/09/26 13:24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습니다. 무려 8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누적 매출액은 불과 279억원입니다. 가입자는 6만1000여명에 불과합니다.

이 숫자는 바로 지난 SK텔레콤의 지난 2006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서비스를 해온 와이브로 성적표입니다.

SK텔레콤은 지난 2005년 와이브로 사업권을 획득, 7년간 사업을 해왔습니다.

성적표는 민망하다못해 안스러운 수준입니다. 2월말 기준으로 총 투자비 8373억원, 가입자 6만1000명, 누적매출액 279억원 입니다. 2005년 당시 SK텔레콤은 주파수 할당대가로 정부로부터 1170억원을 부과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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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부터 돈을 내고 주파수를 빌려 사업해서 돈을 벌어야 할 판인데, 재료값(주파수)도 못건진 셈입니다. 주파수 할당대가 및 누적 투자비와 누적 가입자수를 단순 계산하면 1인당 가입자 유치에 무려 1500만원 이상 쓴 셈입니다.

KT는 SK텔레콤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별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KT는 지금까지 총 1조981억원을 투자했고, 가입자는 78만2000여명을 모집했습니다. 누적 매출액은 1883억원 입니다. 주파수 할당대가는 건졌지만 역시 손해가 막심합니다.

◆와이브로 실패 요인은?

2005년 주파수 할당당시 와이브로는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정부 연구기관 ETRI는 물론, KT, 삼성전자, 심지어 소비자들까지 와이브로가 제2의 ADSL, CDMA 뒤를 잇는 제2의 IT 성공신화가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당 시 정통부와 KISDI는 와이브로 가입자가 2010년 885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서비스 사업자의 누적 매출은 5년간 8조1778억원이 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ETRI도 2010년에 최대 917만명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와 함께 단말기, 기지국장비 등도 조단위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속속 등장했었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현실은 참담한 수준입니다. 예상치의 10분의 1에 근접조차 못한 성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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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참담하게 실패했을까요?

사 업자들의 노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도 있고, 제한된 단말의 한계, 한정된 커버리지도 원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결국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4세대 이동통신 기술로는 이미 LTE(Long Term Evolution)가 장악했습니다. 같은 기술로부터 분화된 LTE와 와이브로지만 한마디로 규모의 경제 구현 여부가 성패를 가른 셈입니다.

지금와서 보면, 당시 고심끝에 사업을 포기한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이 현명했던 셈입니다.

욕심버린 와이브로, 명맥은 이어가겠지만…

지난 16일 방통위는 7년간 주파수를 사용한 KT와 SK텔레콤에게 다시 주파수를 재할당 했습니다. 이용기간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7년입니다.

과거 장밋빛 전망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참담한 성적표가 정부와 사업자의 정신을 강하게 때린듯 싶습니다. 주파수 할당대가도 2005년에 비해 15% 수준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만큼 예상하는 매출액이 줄어든 셈입니다.

또한 와이브로 주파수 용도를 무선랜 중계용으로 허용했습니다. 3G보다 빠른 장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입자 모집이 쉽지 않았는데 LTE 시대에서는 더욱 불 보듯 뻔합니다. 사실상 트래픽 분산용도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듯, 16일 재할당을 의결하는 자리에서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계륵'논쟁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먹자니 별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 말입니다.

어찌됐든 '계륵' 와이브로를 앞으로도 살리고 발전시키기로 결정한 셈인데 KT 30MHz폭, SK텔레콤 27MHz폭 등 총 57MHz폭이나 되는 주파수를 이렇게 밖에 활용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아울러 양문석 상임위원 주장처럼 정부의 정책실패, 사업자들의 사업계획 미준수에 대한 책임소지 등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나오지도 않았고, 책임은 얼마인지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는 것 역시 아쉬움입니다. 실패에 대한 혹독한 반성 없이는 성공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와이브로는 기술종주국 한국에서조차 성공하지 못하고 출구전략을 찾는 사업모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03/21 09:22 2012/03/21 09:22
14일 오후 3시50분경 방통위 기자실에 서병조 방송통신융합정책실 실장(1급)이 방문했습니다.

이유는 정든 방통위를 떠남에 있어 그 동안 친분있던 기자들과 공무원 신분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병조 실장은 항상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 였습니다. 국회에서 가끔 국회의원 질의에 답변하거나 방통위 전체회의 등에서나 가끔 경직된 표정을 지을뿐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곤 했습니다.

오늘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기자들과 악수하며 "자유인이 되는 것을 축하해달라"고 말하고 역시 웃는 얼굴로 문을 나섰습니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라는 노랫말이 생각이 나는군요.

이번에 서병조 실장을 보냈으니 조만간 이기주 기획조정실 실장과도 인사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두 실장 모두 꼭 1년만에 방통위를 떠나게 됐습니다.

서, 이 실장은 다음달부터는 한 로펌으로 출근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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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조, 이기주 실장은 59년생 동갑내기로 상대적으로 실장진급이 빠른 편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전 젊은 실장의 등장은 기존 실장의 자리를 밀어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아니 선배들의 용퇴로 후배들의 약진이 이어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당시 설정선 융합정책실장과 이명구 기조실장이 후배인 서병조, 이기주 실장을 위해 아름다운(?) 용퇴를 했습니다. 이유는 승진자는 많은데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시 서병조, 이기주 실장이 같은 위치에 서게 됐습니다.

기약할 수는 없지만 현재 방통위 조직체계가 계속 이어진다면 두석의 방통위 실장 자리는 계속해서 1년 단위로 바뀔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장 승진이 곧 용퇴를 의미하는 구조가 돼버렸습니다. 실장 승진이 이제는 나가야 할때로 인식될 지경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현재 방통위 구조상 어쩔 수 없습니다. 고위직 인사에 숨통을 틔울만한 통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통부 해체 이후 이같은 현상은 매년 반복되고 있습니다. 실장들은 1년되면 알아서 나가줘야 하고, 파견 나간 국장들이 들어오면 안에 있는 국장들은 밖에 나갔다 와야 되고...

59년생 우리나이로 52세. 능력있는 공무원이 용퇴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입니다.

웃는 얼굴로 자유인이 되는 것을 축하해달라고 했지만 정말 축하할 수는 없네요. 언제까지 아랫돌 빼 윗돌 메우기식의 인사가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PS) 포스팅하려고 하니 이기주 실장이 인사하러 왔네요. 역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이외에는 건넬 말이 없습니다.
2010/06/14 17:03 2010/06/14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