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일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위원장의 규제 철학, 언론관, 산업관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자리였다. 물론, 방통위는 다른 독임제 부처와는 달리 5인의 상임위원들의 합의에 의해 정책을 결정하는 만큼, 이 위원장의 철학과 세계관이 정책에 100% 반영되는 구조는 아니다.

예전 최시중, 이계철 전 위원장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다. 최 전 위원장의 카리스마와 정치력을 갖췄고, 이 전 위원장의 산업관 또한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기본적으로 공정성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규제 측면에서는 옛 위원장들에 못지않은 강성으로 보인다.  

그동안 최시중 전 위원장의 경우 통신에, 이계철 전 위원장은 방송 부분에 취약했다. 청문회나 국회 업무보고 때마다 직원들 도움받기에 급급했다.

상대적으로 이 위원장의 경우 자신이 이끌어가야 할 조직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방송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분야에서 업무 파악이 돼있다는 것이 방통위 고위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금까지 이 위원장은 정치인 이경재의 모습이 강했다. 원래 언론인(동아일보) 출신이고 공보처 차관 등을 역임해 역대 위원장 중 언론, 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인다.

자신의 철학과 방향성 제시도 상대적으로 명확했다. 물론, 옛 방통위와 신 방통위의 업무는 다르다. 대부분 통신, ICT 업무가 미래부로 이관됐기 때문에 이 위원장이 감당해야 할 부분도 줄어들었다.  

이 위원장은 방송과 관련해서는 공정성을 강조했다. 수평적 규제체계를 만들고 사업자간 공정경쟁 철학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방송정책을 기대할만 해 보인다. 지상파 재송신에 대한 문제 해결의지, KBS 수신료 문제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통위원장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정치적으로 투명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수 많은 비판속에서도 결국 무더기로 종편사업자를 선정한 바 있다. 방송 분야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때 위원장이 앞장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위원장 역시 이 같은 논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최근 이 위원장의 행보 중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유사보도 채널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다. 이미 방통위는 방송법상 보도가 금지된 전문편성 방송사의 유사보도실태 조사에 나섰다.

유 사보도채널의 보도 행위에 대한 논란은 계속돼왔다. 하지만 최근 이 위원장의 발언, 그리고 방통위의 조사는 정치적 강도가 높아지는 풍자 프로그램이나 토론프로그램, 특히 여권이나 청와대를 겨냥한 프로그램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과거 최 전 위원장의 별명인 ‘방통대군’대시 ‘공정대군’으로 불리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공정대군’으로 평가를 받으려면 매사에 공정해야 한다. 스스로 공정했다고 생각해도 방송통신 규제권을 쥐고 있는 방통위 수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면 불공정 시비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경재 위원장과 최시중 전 위원장은 동아일보, 정치인 출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평가는 다르기를 희망한다.

3년 후 이경재 위원장이 '공정대군'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지, 최 전 위원장의 뒤를 이어 제2의 '방통대군'으로 불리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온전히 자기 몫이다.


2013/05/14 09:38 2013/05/1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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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는 5인의 상임위원이 전체회의를 통해 합의를 거쳐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다.

위원회이기 때문에 부, 청 밑이고 방통위원장은 국무위원도 아니다. 하지만 방통위 위상은 수 많은 위원회 중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다. 방통위원장은 사실상 예전 정통부 장관과 같은 지위를 갖고 있고 상임위원들은 차관급에 해당된다.

즉, 장관 1명과 4명의 차관이 합의를 통해 방송·통신 및 ICT 현안에 대한 정책, 규제를 결정하는 곳이 바로 방송통신위원회인 것이다.

하지만 방통위 실패에 대해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바로 이 합의제 구조의 상임위원회이다.

대통령이 위원장과 상임위원 1명을 임명하고 여당이 1명, 야당이 2명을 추천한다.

상임위원 구성부터가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방송 특수성을 감안할 때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장은 여당 및 청와대의 방송철학을 대변할 사람이 올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여야가 상임위원을 추천하니 당연히 상임위원회가 정치화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불명예 퇴진한 최시중 씨가 초대 방통위원장 자리에 올 때부터 상임위원회의 파행 운행은 예정돼 있었다. 기자 출신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그가 우리나라의 통신, ICT 정책을 총지휘 한다는 것 자체로 방통위에 대한 정권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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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거쳐간 상임위원들 면면을 보면 전문성을 확보한 인사보다는 각 당의 철학을 정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지적한 종편정책, 통신정책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인사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정치화된 조직이다보니 상임위원이라는 책임도 손쉽게 벗어버리곤 했다.

1기의 경우 이병기 전 상임위원이 임기를 1년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했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그는 표면적 이유로 "대학에 복귀해 인재를 육성하겠다"를 들었다. 하지만 정치적 쟁점이 빈번하게 발생한 방통위에서 기술전문가로서 한계를 느껴 사퇴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신용섭 상임위원이 사퇴, EBS 사장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양문석 상임위원은 김재철 MBC 사장 해임안 부결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방통위는 위원회 조직이지만 상임위원들은 장차관의 지위와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임기 3년을 법으로 보장받는다. 수시로 교체되는 부처의 장차관과는 다르다. 하지만 정치적 의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손쉽게 상임위원 자리를 내던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상임위원회 조직의 정치화는 출범 때부터 예견됐고, 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러한 상임위원회 구조 때문에 급변하는 ICT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또한 꾸준히 제기됐다.

이같은 합의제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차관급 사무총장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이 역시 여야의 의견대립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건전한 토론을 통한 합의제를 표방했지만 대선을 앞두고 MB 정부의 방통위는 스스로 해체수순을 밟고 있다. 위에서는 정치로 싸우고 나가고, 밑에서는 내년 ICT 통합 부처가 어떻게 구성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업계의 작은 소망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2012/11/09 09:35 2012/11/09 09:35
방송통신위원회 5년간 방송 못지 않게 통신 분야에서도 매번 뜨거운 이슈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동통신 요금 인하 문제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 통신요금 20%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전이어서 이동통신 요금 이슈는 음성 통화료 및 문자요금 인하에 초점이 맞춰졌다.

통신요금 인하 요구의 근거는 메릴린치나 OECD 보고서였다. 국가간 요금비교 결과 우리나라 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싼만큼, 요금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업자들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방통위의 압박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결국 이통사들은 2010년 SK텔레콤을 필두로 1초당 과금제 도입, 문자요금 10원 인하를 단행했다.

지난해에는 기본료 1000원 인하가 단행됐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당시 고통분담을 강조했다.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온나라가 어려우니 통신사들도 요금인하로 화답하라는 취지였다. 당시에도 SK텔레콤이 먼저 기본료 1000원을 인하했고, KT와 LG유플러스가 동참하는 모양새로 귀결됐다.

방통위 출범 이후 이뤄진 요금인하에는 패턴이 있다.

먼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만 무력화시키면 나머지는 알아서 된는 것이다. 발신번호표시(CID) 무료화, 초당과금제 도입 모두 SKT가 먼저 총대를 멨다. 그러면 시장 쏠림 현상과 규제기관의 눈치를 보다가 KT와 LG유플러스가 동참하는 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방통위의 통신요금 인하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최시중 전 위원장이나 현 이계철 위원장의 공통된 통신요금 인하 정책에 대한 철학은 '경쟁활성화' 였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하하고 후발 사업자가 버티다가 결국은 동조하는 패턴, 이는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의 고착화로 이어졌다.

요금인가제로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을 적정수준에서 묶어 놓으면 후발사업자는 SKT의 요금구조와 거의 비슷한 형태로 내놓는 현상이 반복됐다. 3G는 물론, LTE 등 스마트폰 요금제 구조가 대동소이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한 요금인하는 없었던 셈이다. 오히려 이통사들은 규제기관의 권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보조금 경쟁만을 반복했다. 보조금 가이드라인은 한차례도 지켜진 적이 없다.

요금경쟁 활성화 대신 보조금 경쟁이 활성화되다보니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고가 스마트폰 구조의 고착화라는 현상도 발생했다. 가입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최신형 단말기가 필요했고, 보조금 지급을 통해 소비자가 고가 단말기를 공짜로 구매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제공하는 식으로 경쟁이 이뤄졌던 것이다.

물론, 이통사들의 경쟁 정책의 한계로도 볼 수 있지만 방통위가 강조했던 경쟁활성화 정책의 실패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통3사의 경쟁만으로는 고착화된 시장구조가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새로운 경쟁환경을 만드는데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제4이동통신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알뜰폰(MVNO) 정책도 우여곡절끝에 간신히 시행됐지만 현재까지 성적은 기대이하다. 틈새시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전체적인 요금수준을 내리기에는 아직까지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자급제 정책 역시 시행된지 오래되지 않은 만큼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지만 현재까지 성적은 기대이하다.

방통위는 내년 조직개편이 유력시되고 있다. 한마디로 5년간 방통위가 통신요금 정책과 관련해서는 시장도 잡지 못했고, 요금도 팔목비틀기식으로 내렸다는 평가 이상이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2012/11/01 11:35 2012/11/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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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 그리고 ICT 기술과 타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국가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데 있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방통위 사무국이 이 같은 목적을 위해 지난 5년간 나름 열심히 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임위원회는 달랐다. 산업보다는 정치가 목적이었다. 방송의 장악과 이를 막기 위한 정치적 대립은 지난 5년간 끊이질 않았다. 방통위의 ‘정치과잉’ 평가의 단초는 방송에서 시작됐다.

‘정치과잉’의 중심에 있는 사안은 바로 종합편성채널사용사업자(이하 종편)의 선정이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우리도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육성이 필요하다”며 종편 등장의 당위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최 전 위원장이 보수 신문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방송을 선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 신문들 모두 사업권을 획득했다. 오히려 방송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태광산업은 가장 많은 자본금에 5년간 1조2000억원을 제작비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큰 점수차로 탈락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방송광고 시장의 크기를 감안할 때 복수의 종편 등장은 전체 시장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방통위는 절대평가 방식을 채택해 일정 기준을 통과하는 사업자는 모두 승인했다. 보수 신문 중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줬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비판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종편은 선정 과정에서 수 많은 정치적 논쟁을 낳았고 출범한지 1년 정도 지난 지금은 산업적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종편은 중간광고 허용, 광고시간 연장, 공익광고 축소, 광고품목 확대, 직접광고 영업 허용, 자체 제작프로그램 비율 배려, 의무전송채널 지정, 황금번호 부여 등 다양한 특혜를 받았지만 현재 성적표는 0%대 시청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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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순손실 1700억원에 재방률은 50~60%이다. 당초 기대한 고용창출 효과는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출범한지 1년도 안됐지만 일부 종편을 제외하고는 프로그램 다양성 측면에서 '종합'은 사라진지 벌써 오래다.

결과적으로 통신의 경우 시장진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방송만큼은 정치적 목적에 매몰돼 향후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조차 외면한 무책임 정책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모 종편이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우리 회사를 인수해달라며 모 기업과 날을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크기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무더기 사업자 선정이 초래한 결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방통위는 시장 초기인 만큼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계철 위원장은 최근 방통위 국감에서 종편과 관련한 질문에 "초창기여서 단편적으로 보기 어렵지만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평가와는 정반대다.

위피(WIPI), DMB, 와이브로 등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통신정책의 경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책 도입의 취지와 시장상황 측면을 감안할 때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위피의 경우 스마트폰 시대로의 진입을 늦춘 것으로 평가되지만 당시로서는 이통3사의 플랫폼 표준화를 통해 콘텐츠 사업 활성화의 기반이 됐고, DMB 역시 모바일TV의 단초를 마련했고 여전히 활용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밀린 와이브로지만 이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들이 차별화를 달성할 수 있었고, 소비자 편익도 적지 않았다.

물론, 합종연횡, 구조조정 등을 통해 살아남는 종편이 앞으로 SBS와 같은 상업방송사로 발전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하지만 정책목표가 진짜 제대로 된 미디어 육성이었다고 하면 4개의 종편을 선정해서는 안됐다. 글로벌 미디어 육성은 다른 MPP 등의 지원을 통해서도 달성 가능했다. CJ는 종편 사업자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쳐 지상파를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방송시장과 콘텐츠 활성화라는 기본적인 정책이 아닌 정치적 판단으로 등장한 종편은 아직까지는 개별PP, 제작사, 광고시장의 공공의 적이다.

그렇다고 종편을 살리기 위해 앞으로 더 특혜를 제공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남은 것은 무한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종편이 과감한 투자와 인내심을 통해 제대로 된 종합편성채널로 자리잡는 것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2/10/31 14:41 2012/10/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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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의 5년 평가에서 위원장의 평가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이계철 방통위원장의 경우 2기 위원장에 취임한지 몇 개월 되지 않았고, 조직개편을 앞둔 상황임을 감안하면 현 시점에서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초대 위원장과 2기 위원장 역임을 하다 불명예 퇴진한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합의제 상임위원회였지만 사실상 제왕적 위원장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과 정책을 집행, 방통위의 ‘정치과잉’ 평가의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한국갤럽 등을 거쳐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잘 알려져있다.

5인의 방통위원은 여당 몫 3인, 야당 몫 2인으로 구성돼있다. 1기 이병기 상임위원의 사퇴로 1기 위원회 후반 합류한 양문석 현 상임위원은 합류 이후 본인이 겪은 방통위 조직에 대해 “최시중 위원장의 신정정치”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만큼 최시중 전 위원장은 올해 초 사퇴하기 전까지 방통위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 '만사형통'(萬事兄通 모든 일은 형님을 통한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최시중 전 위원장에게는 '방통대군'이라는 수식어가 자리했다. 그만큼 최 전 위원장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하지만 최 전 위원장은 정치적 측면에서 거대한 권력을 쥐고는 있었지만 그러한 힘을 ICT 정책에는 발휘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와 방송 분야의 전문가였을지 모르지만 ICT 분야는 최 전 위원장이 의욕만 갖고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 전 위원장의 재임 당시 우리의 ICT 국제 경쟁력 지수가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와도 방통위는 "그렇지 않다"며 다른 지수를 들이대곤 했다.

문제는 최 전 위원장은 물론, 대다수 상임위원들이 ICT 비전문가였다는 점이다. 방송과 통신의 시장 크기를 단순히 수치화하더라도 현재 상임위원의 산업적 배분은 상당히 정치 편향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실장 등 사무국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해야 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합의를 통하 정책결정 구조상 실국과장들의 권한과 책임은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퇴색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최 전 위원장이 떠난 지금은 당시의 평가를 인정하며 새로운 ICT 정부조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당시 제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신하는 없었다. 그가 떠난 후 비로소 현재의 문제점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머지 2인의 여당측 추천 상임위원들도 최시중 전 위원장의 뜻에 본인들의 철학을 정확하게 일치시켰다. 합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겠다던 상임위원회가 최 전 위원장의 일방독주로 흐를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야당 측 상임위원들의 회의에서의 퇴장은 시간이 지날 수록 큰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최 전 위원장이 기자들이나 외부 강연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캄보디아 여행기이다. 가난에 찌든 캄보디아를 보면서 우리에게 뛰어난 경제 전문 대통령이 필요하고 그 주인공이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이다.

대통령과의 이 같은 관계 때문에 최시중 전 위원장 체제의 방통위의 역할 또한 분명했다. 다음 번에 종합편성 정책에 대한 분석을 하겠지만 최 전 위원장은 종편 출범에 정책의 역량을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상파 재송신 제도개선, 망중립성 제도개선, 방송법 시행령 개정 등 방통위 대표적인 만만디 정책과 달리 종편 정책의 추진은 일사분란했다. 방통위가 종편 사업자를 최종 선정한 날은 2011년 12월 31일이다.

이날은 토요일이었지만 정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전체회의가 강행됐다. 종편 논의에서 야당 추천 상임위원의 반대와 시장에서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최시중 위원장은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 성향 신문에 무더기 사업권을 하사했다. 물론 지금의 방통위는 절대평가 방식이었기 때문에 기준을 통과한 언론에 사업권을 줄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현재 ICT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5년간 시행착오을 겪었다고 현재의 방통위 조직을 다시 바꾸기 보다는 그간의 실패를 향후 방통위 5년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논쟁거리를 늘 갖고 있는 방송을 다루는 방통위 특성을 감안할 때 지난 5년간 상임위의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 전 위원장 만큼의 제왕적 권력을 가진 위원장이 다시 오기는 지 않겠지만 정권을 장악한 곳은 방통위를 방송의 통제수단으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최 전위원장이 지난 4년간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너무 안 좋은 사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2012/10/30 09:45 2012/10/30 09:45
12월 대선을 앞두고 ICT 조직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단행된 정보통신부 해체는 5년이 지난 지금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부처간 의견조율이 실질적으로 어려웠고 세계 ICT 산업 환경이 C(콘텐츠)-P(플랫폽)-N(네트워크)-D(디바이스)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현재의 분산형 거버넌스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과거 정통부+α가 될지, 전혀 새로운 부처가 될지, 방송분야가 독립을 할지 아직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 조직개편에 앞서 현재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먼저 반성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새로운 그림을 올바르게 그릴 수 있다. 특히, IT와 산업의 융합차원에서 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의 한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방통위의 구체적인 정책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성과와 한계를 집중 분석해 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5년의 평가에 있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조직 문제다. 부처, 청도 아닌 수백개 중 하나인 위원회로 출범한 방통위는 방송위와 정통부를 결합하며 미국의 FCC를 표방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진흥도, 규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해온 정통부와 방송위의 동거는 방통위 출범 초기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겉으로 보면 정통부와 방송위의 1:1 결합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방송위가 정통부에 흡수·합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수인 정통부가 조직을 장악했고 그 가운데 보수, 직급, 업무 적응 실패 등의 이유로 방송위 출신들의 이탈이 한동안 이어졌다.

당연히 실·국장 등 고위직은 정통부 출신 행정관료 등의 차지였다. 방송위 업무였던 방송정책 역시 정통부 출신들이 집행했다.

방통위 출범 당시 전체 14명 보직자 가운데 정통부 출신은 9명, 방송위 출신은 3명이었다. 시작부터 방송위 몫은 적었지만 2012년 현재 방송위 출신 실국장은 단 한명도 없는 상태다.

과장급 보직자 현황 역시 상황은 동일하다. 방통위 출범 당시 전체 53명 보직자 가운데 정통부 출신은 35명, 방송위 출신은 18명이었다. 현재 과장금 68명 중 정통부 출신은 50명이고 방송위 출신은 정원 증가에도 불구 17명으로 한명이 줄었다.

이상식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공무원 조직의 권위주의적 특성이 많이 반영되고 행정관료 조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폐쇄적, 창의성 결여, 문서화, 위계성 강조 등이 부각됐다"며 "그 결과 방송위 조직의 개방성, 창의성 등 민주적 분위기를 지닌 유연한 조직 특성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따라 융합업무를 담당해야 할 전문가 영입 필요성도 제기됐지만 오히려 기존의 방송 관련 인력이 조직을 떠나면서 조직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상임위원회였다. 여야, 대통령 몫으로 구성된 5인의 상임위원들은 전문성, 정책역량 보다는 정당의 의견을 대변할 사람들로 구성됐다.

몸통은 정통부가 더 컸지만 머리(상임위원)은 오히려 방송, 정치 관련 인사가 더 많았다. 결론적으로 여 3, 야 2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는 말그대로 산업정책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보다는 종편, 방송법 개정 등 정치성이 결부된 사안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5인의 상임위원은 방송 및 시민단체가 3명, 통신이 2명이다. 그나마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이계철 위원장이 온 것이다.

이상식 교수는 "방통위 설립은 노골적인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으로 간주됐다"며 "정치적으로 강행된 초대 위원장 임명은 정치적 반발을 초래했고 여타 위원들의 전문성, 미디어에 대한 철학 및 정치적 역량, 사회적 명망 등의 차원에서 문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2012/10/29 14:54 2012/10/29 14:54

[기획/딜라이트닷넷 창간 3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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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진대제, 이명박 정부의 최시중. 이 둘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ICT에 대한 시각은 어떻게 다를까.

이명박 정부 들어 등장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실상 다음 정권에서 수명을 이어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편의 범위와 방식에 이견이 있을 뿐 현재의 ICT 정부조직으로는 다음을 준비하고 이끌어가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서는 ICT 거버넌스 체계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각 당에 많은 학자들이 붙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체신부, 정통부 전직 장차관, 전직 고위공무원, 협단체 등이 모여 본격적인 방향 모색에 들어갔다.

혹자는 정통부 부활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통부 때보다 오히려 규모가 커진 독임제+위원회 조직을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왜 정통부가 해체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출범한 방통위의 한계와 역할은 무엇인지를 먼저 규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ICT 발전을 위한 조직개편 논의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운영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의 철학이다.  

먼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정치인 중 가장 IT와 가까운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4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정치인을 위한 인물 관련 종합자료 관리 프로그램인 '한라 1.0'을 직접 개발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선택한 인물은 바로 진대제씨였다. 진 전 장관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부문 상무, 메모시 사업부장, 디지털미디어 총괄대표 등을 역임한 자타가 공인하는 IT 전문가였다.

업계의, 그것도 삼성전자 사장 출신을 ICT 정부조직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게다가 진 전 장관은 노 전대통령과 임기를 대부분 함께 했다. 이는 정책과 현장의 괴리감을 없애고 정책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적극적인 정보기술 정책이 이어졌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2003년 13위에 그쳤던 세계 각국의 전자정부 평가에서 2004․2005년 연속 세계 5위로 순위를 급상승시켰다. 정보기술로 국민 참여 정도를 측정하는 전자적 참여지수는 2003년 12위에서 3위로 껑충 뛰었다.

이때 구축된 경쟁력은 이명박 정부들어서도 우리나라가 전자정부 지수에서 최고를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물론, 진대제 전 장관의 정통부가 조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놓고 방송위원회와의 갈등은 결국 정통부 해체의 단초가 됐다. 다른 분야와 융합보다는 독자적인 정책방향은 적들을 만들어냈다. 로봇이나 전자정부 등 정통부가 맞기에는 애매한 분야에도 정통부가 발을 걸치며 영역을 확장한 것 역시 결과론적으로는 독이됐다.

최근 ICT 분야의 11개 협회, 15개 학회, 7개의 포럼을 비롯해 전직 체신부, 정통부 장차관 등이 참여한 'ICT 대연합 출범식'에서는 공교롭게도 진대제 전 장관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진 전 장관이 정통부 해체의 단초를 마련했을수도 있기 때문에 이름을 차마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통부를 해체하고 새롭게 ICT 융합정책을 이끌어갈 방통위의 수장으로 최시중씨를 앉혔다. 최 전 위원장은 대한민국 권력서열 No3, 방통대군 등으로 불리우며 4년 가까운 시간을 위원장으로 재직했다.

다른 장관과는 달리 최시중 전 위원장이 1기에 이어 2기에도 연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정책의 일관성 유지 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대제 전 장관은 나름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전 위원장의 조합도 상당히 어울렸다. 문제는 목적과 방향성 이었다.

노 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ICT에 친화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IT는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안된다"는 발언으로 ICT 업계를 실망시킨 바 있다. 각각 소통과 4대강으로 요약되는 철학이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진대제 전 장관은 업계 전문가였고, 최시중 전 위원장은 정치 전문가였다. 최 전 위원장은 스스로를 정치인으로 여겼고, 현 대통령의 멘토이자 차기 대통령의 멘토를 꿈꾸던 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씨를 방통위 수장에 앉히고 연임까지 시킨 목적은 분명했다.

ICT 발전에 대해 책임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종편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이슈의 마무리 때문이었다. 최 전 위원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한국갤럽 사장 등을 거쳐 방통위원장 자리에 올라섰다. ICT에 대한 경력은 전무했고, 방통위원장에 임명됐을 당시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업계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 최시중 위원장은 정권의 종편 출범을 위해 위원장을 맡았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 강한 추진력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진대제 전 장관과 최시중 전 위원장의 공통점은 대통령의 신임을 전폭적으로 받았고, 임기 역시 다른 장관과는 달리 장수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목적이 달랐던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은 결국 새로운 정부조직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제공 방송통신위원회>


2012/09/26 13:27 2012/09/26 13:27
- 딜라이트닷넷 창간 3주년 특집기획

연말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ICT 정부 거버넌스 개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라고 했던가.

디지털데일리 <딜라이트닷넷>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정통부의 공과(功過)와 앞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방통위의 공과(功過)를 통해 앞으로의 ICT 정부 거버넌스의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대선을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세종시로 정부부처가 이전하기 시작했고, 공공기관들도 나주, 진천, 음성, 서귀포, 원주 등 10곳의 혁신도시로 이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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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부조직 개편 중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분야는 방송통신위원회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보통신부 해체 이후 방송위원회와 신접살림을 꾸리고 통신과 규제를 제외한 제조, 보안,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은 지경부, 문화부, 행안부 등으로 분산됐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국내외 ICT 환경이 생태계, 플랫폼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현재 우리의 ICT 정부조직 기능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게다가 정통부 대안 역할을 해주는 것은 물론, 융합 시대를 활짝 열 것으로 기대됐던 방통위는 매사 정치 관련 이슈로 방송, 지면을 장식했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임위원들, 비정상적 합의제 구조로 운영 효율성마저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었다. 방통위 출범 이후 내내 IT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끊이질 않았다.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보니 다시 정통부 부활론이 솔솔 불고 있다. 물론, 참여정부 시대의 정통부의 모습은 아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ICT 산업 전반은 물론, 콘텐츠까지 아우르는 그림을 그리느라 한창이다.

참여정부 시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삼성전자 출신인 진대제씨를 첫 정통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진 전 장관은 참여정부 국무 각료로서는 보기 드물게 노 전대통령과 임기를 대부분 함께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진 전 장관에게 10년 15년 뒤의 우리나라 IT 기반을 닦아 놓을 것을 주문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IT839 정책이었다. 8대 서비스와 3대 인프라 및 9대 신성장동력을 통해 우리나라 IT산업을 총체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IT839는 정통부 해체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당시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정부조직의 군살을 빼내야 한다"고 말했고 인수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IT839의 9대 신성장동력 대부분(차세대 이동통신기기․디지털TV/방송기기․홈네트워크 기기․텔레매틱스 기기․차세대PC․지능형 로봇․IT SoC․임베디드SW․디지털 콘텐츠)를 지경부, 문화부 등으로 이관했다.

물론, 담당 부처가 바뀌었을 뿐 IT839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ICT 담당부처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면서 정부조직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에 전달됐다.

특히, 정통부 후계자인 방통위는 방송위와 합치면서 ICT 조직보다는 방송 이슈에만 매몰되는 모습을 보였다.

평가는 저마다 다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업계 최고수로 꼽히던 진대제씨를 장관을 앉혔고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씨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했다. 둘은 나란히 대통령과 임기 대부분을 함께 했다.

하지만 최시중 위원장은 ICT 분야에는 문외한 이었고, 조중동 특혜로 대변되는 종합편성채널 출범에 온힘을 기울였다. 방통위는 합의제로 운영됐지만 여당측 3인, 야당측 2인으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는 최시중 전 위원장의 일방통행을 견제하지 못했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최시중 전 위원장 임기 4년간의 평가를 "중구난방, 정치과잉, 용두사미"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최시중 전 위원장의 방통위는 ICT 현안보다는 정치적 이슈에만 몰입했었다. 산업간 융합,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당초 방통위의 정책과제는 5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IPTV를 정책적 성과로 얘기하지만 단순 유료방송 플랫폼이 하나 더 등장했다는 것 이외에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제공 방송통신위원회>
2012/09/26 13:24 2012/09/26 13:24
“평생 기자 할 수 있나. 자네들도 기자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구. 자네 나이면 이제 인생 이모작을 위해 준비해야 할 때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시행사(파이시티)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을 일부 시인했습니다. 금품수수는 일부 사실이지만 인허가와 관련한 청탁 대가는 아니라는 것이 그의 해명입니다.

과거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 시절 여론조사를 했고, 당시 여유가 있었던 파이시티 전 대표가 대가 없이 지원을 해줬다는 것입니다. 최 전 위원장의 금품수수 사실 인정을 놓고 여러 해석이 오고 갑니다. 본인이 인정한 만큼, 일단 돈을 받은 것은 ‘팩트’인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서 지난 4년간 최 전 위원장과 한 건물에서 일을 했던 기자는 권력 지향적인 인물의 말로
(末路)는 좋게 끝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최 전 위원장은 기자(동아일보) 출신입니다. 최 전 위원장은 정기적으로 기자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인생 이모작론’이었습니다.

기자 생활하면 얼마나 하겠냐. 너희들도 기자경력을 발판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라는 취지였습니다.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하려 움직이는 것은 왠만한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최 전 위원장은 기자에서 갤럽 회장으로 대통령 정치적 멘토로, 방통위원장으로 여러 차례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방통위원장 재직 시절에도 임기를 마쳐도 쉬지 않겠다는 그의 모습에 나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성공이 거짓과 부정으로 점철된 것으로 점차 드러남에 따라 그의 화려했던 인생 농사도 결국은 흉작으로 끝나는 모양새입니다.

기자 출신으로 70억원이 넘는 재산을 축적한 것에 대해 많은 기자들이 “롤 모델은 최시중”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재산도 정상적으로 모인 것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는 “정치는 사람하고 돈을 빚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빚은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 정책보좌관 비리의혹부터 방송통신과는 관련 없는 분야에서까지 돈을 받아 챙긴 최 전 위원장은 말년에 한꺼번에 빚을 갚게 됐습니다.
최 전 위원장의 좌우명은 ‘새옹지마(塞翁之馬)’입니다. 유한(有限)한 인생입니다. 좋은 일이 다시 최 위원장에게 올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의 멘토, 방통대군의 몰락은 전혀 안타깝지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인사가 4년 동안 대한민국의 방송·통신 정책을 좌지우지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본인의 부정에 대한 빚은 법에 따라 갚게 되겠지만 4년간 방송·통신 시장을 후퇴시킨 것에 대한 빚은 받아낼 길이 없습니다.
2012/04/24 10:02 2012/04/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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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정보통신부 말부터 정보통신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1기 취임 때부터 지난 27일 사퇴할 때 까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지켜봐왔습니다.  

지난 4년간의 기억을 더듬어 최시중 위원장 위원장의 행적들을 한 번 리뷰해보고자 합니다. 방송통신 정책의 총책임자로서의 철학, 업계의 분위기, 내부 조직원들의 평가 등 외부에서의 평가와 개인적인 생각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최시중 위원장은 동아일보 기자출신으로 한국갤럽회장을 거쳐 방통위에 입성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익히 아시듯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서 이상득 의원과 함께 이 정부에서는 실세 중의 실세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정통부 해체, 암울한 역사의 시작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함께 정통부를 해체하고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며 방통위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초대 위원장으로 최시중씨를 임명했습니다.

2007년 당시 정통부의 기자단 송년회와 2008년 정보통신인 신년 인사회 분위기는 참으로 우울했습니다. 광화문 정통부 인근의 호프집에서 열렸던 당시 송년회에서 유영환 장관을 비롯한 많은 정통부 공무원들이 ‘비분강개’ 했더랬습니다. 덕담을 나누어야 할 신년인사회에서도 해체되는 정통부 탓에 고별주를 나누는 자리가 됐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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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강국을 진두지휘했던 정통부는 그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방통위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여당측 추천 상임위원으로 최시중 위원장과 송도균(전 SBS 사장), 형태근(정통부 출신), 야당측 추천으로 이경자(경희대 교수) 이병기(서울대 교수) 등 5인체제의 상임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이 중 송도균 전 위원은 최시중 위원장의 후임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최시중 위원장은 그의 정치적 배경, 그리고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에 관련 업계의 무수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던 정통부 장관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언론, 시민단체는 물론, IT업계에서도 전문가를 발탁하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무수한 반대를 가볍게 제친 최시중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방송과 통신의 융합, 그리고 방통위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켜내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4년을 돌이켜 보면 그간의 상임위원회의 주요 의사결정이 정치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합의보다는 야당측 상임위원의 퇴장, 여당측 상임위원의 결정으로 주요 정책이 이뤄지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방통위의 독립과 공정성은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방통위 출범의 근거가 됐던 방통융합의 산물 IPTV는 당초 기대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또한 방송법개정, 종합편성채널 출범 등 방송시장의 주요 이슈는 물론, 통신분야에서도 비전문가 최시중 위원장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 IT 경쟁력을 한 단계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통신분야에서는 대게 강압적인 정책이 많았습니다. 인위적인 통신요금 인하가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업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소비자 친화적인 정책이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또한 본인 스스로가 통신분야의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수 많은 출장을 다니면서 전세계 글로벌 IT 기업과 정부부처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한국 ICT의 미래 먹거리에 대해서도 상당히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에게 훌륭한 스터디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현 시점에서 최 위원장이 한국 ICT 산업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시중 위원장의 잘못된 MB 사랑

최시중 위원장의 정책적 결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MB가 있었습니다. 대통령 이명박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 위원장인 만큼, 사후 지원 역시 확실했습니다.

산업은 물론,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방송법 개정과 시장 규모에 맞지 않는 4개의 종편채널 선정이 대표적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4개의 종편은 시장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시장에서 퇴출되는 사업자를 다른 사업자가 인수하게 될 것”이라는 비상식적인 말로 대변했습니다.

반대로 제4이동통신 선정에서는 합격점을 넘어도 시장 규모를 감안해 1개 사업자만 허용하겠다는 입장과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대목입니다. 통신에는 산업논리가 적용됐지만 방송은 MB사랑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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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위원장의 각별했던 MB 사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가난에 찌든 캄보디아를 방문했던 그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고 수차례 언론, 강연 등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눈물과 함께 말이죠. 기자 역시 2~3차례 정도 목도한 바 있습니다.

눈물만 놓고 보면, 아마 장관 중 최다일 것입니다. 처음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순수·열정·절박함 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시중 위원장은 계산된 언행을 하는 정치가 입니다. 스스로를 정치인으로 불렀고, 청문회, 국정감사 등에서 그의 어눌한 발언 역시 고도로 계산된 것들입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기자들에게 이 같은 ‘싸움의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로 비유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그의 정치적 행보 때문일 것입니다.

방통위 출입기자들은 금요일에 돌아가며 최시중 위원장과 점심을 합니다. 오프더 레코드(off the record)를 전제로 격의 없는 대화가 오고 갑니다. 실제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매번 느낀 점은 최 위원장은 정말 이 나라를 많이 사랑하고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 사랑의 방정식이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최 위원장에 대한 세간의 비난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 4모작을 꿈꾸던 방통대군, 비참해진 말년

최시중 위원장은 곧잘 자신의 손금을 자랑하고는 했습니다. 실제 그의 손금을 보면, 굵으면서 길게 이어진 생명선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그는 손금 때문이라도 자신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방통위원장은 수행하면서도 끊임없이 국정원장, 국무총리, 국회의원 비례대표 등 끊임없이 요직 기용설이 돌았습니다. 스스로 역시 ‘은퇴’라는 단어를 생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1937년생 최 위원장은 매우 정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광화문 인근 호텔 헬스클럽에서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한 그는 인생 2모작이 아닌 3모작, 4모작을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그의 신체적 능력과 정치적 모사(謀士) 능력은 그의 말이 허언(虛言)이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훗날을 기약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MB 정권에서의 명예로운 퇴진, 또 한번 대통령을 만들어보겠다는 소망도 모두 물거품이 됐습니다.

최 위원장은 직업적으로 불안한 후배(?) 기자들에게 늘 ‘인생 이모작론’을 설파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해왔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때에는 신중하고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최 위원장을 보며 배웁니다.


2012/01/31 10:47 2012/01/31 10:47